옛 기억들 11

첫 해외 출장

1995년 입사 6년차 첫 해외 출장 Hanover Cebit 전시회 참가와 신제품 발표회 신모델을 전시회에서 소개하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와중에 병역특례가 끝나지 않아 병무청 서류까지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출발 당일 김포 공항 출장 경험이 많았던 상품기획팀 대리가 체크인 하면서 "좋은 자리 좀 부탁해요" 라고 했지만 그 의미를 몰랐다. 해외 여행이 흔하지 않고 출장이 로망이던 시절이었지만, 이코노미 클래스 좁은 좌석에서 10시간 넘게 앉아 가는 고역을 선배들에게 익히 들었지만 넓고 편안한 좌석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게 프레스티지 클래스란 사실은 귀국 비행기에서 알았다. 오른손에는 007 가방을 들고 왼손에는 소현 이민가방을 끄는 모습이 좀 우습긴 했으리라. 취리히에서 환승하면서 하루밤을 묵었는데 체..

옛 기억들 2022.12.14

Penpal

펜팔 (pen-pal)「명사」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벗. 《표준국어대사전》 1981년. 중학교 2학년 시절. 갓 영어를 배우면서 영국인 친구와 펜팔을 맺고 편지 교환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부탁해서 나도 동년배 영국인 친구를 소개 받아서 소식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영어 조기 교육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ABC를 배우던 시절이었으니 중학교 2학년이면 I am Tom. You are Jane.을 갓 벗어난 수준. 편지가 한번 오면 며칠을 끙끙대다가 영어 선생님에게 들고 갔고, 선생님이 조금 도와주는 게 아닌 거의 전체를 번역해 주셨다. 문제는 그 다음. 해석도 안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방법은 더더욱 없었다. 당시 서점에 가면 영어 펜팔 예문을 모은 책이 ..

옛 기억들 2022.11.29

내가 본 천재

개교한 지 2년 된 고등학교. 열악한 지역의 신설 학교 지원을 위해 고입 연합고사 만점자를 대거 몰아 줬다는 카더라 소문도 있었다. 1학년 같은 반 반장은 그 중에서도 남달랐다. 이 녀석도 당연히 연합고사 만점 나는 수학 정석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에 (사실 이게 비정상) 동경대 입시 문제를 구해서 풀던 녀석. 1학년 때 고등학생 영어 경시대회 나가서 2, 3학년 제치고 상 받아 오고 장학퀴즈 기장원까지 휩쓴 친구. 1학년 담임이 독일어 담당이었지만 1학년 때 독일어 수업은 없었(다고 기억하)지만 겨울 방학이 다가올 즈음에 잠시 공부해서 독일에 1달간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독일에서 방학을 보낸 녀석. 항상 말과 행동에 여유가 있어서 부러웠던 친구 학력고사 성적이 생각만큼 안나왔다고 하면서도 서울대 ..

옛 기억들 2022.11.09

성문 종합 영어, 수학의 정석

개교한 지 갓 3년째 접어드는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고입 연합고사와 반 편성 시험 결과를 가지고 각 반의 반장과 부반장을 뽑았고, 1학년 때 반장/부반장을 한 사람은 3년 내내 반장/부반장을 맡는 전통(?)이 있었다. 큰 시험에 유독 강했던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월등한 점수 차로 전교 1등을 한 친구가 반장을 했다. 1학기 중간고사 후 수학 시험 답을 맞추는데, 반장과 내가 생각하는 답이 달랐고, 누구나 반장의 답이 정답일 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이 정답이었다. 그 과정에 반장과 친구들이 보인 태도에 상당한 굴욕을 느낀 후에야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을 본다는 걸 알았다. 1980년대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의 정석. 동생 병..

옛 기억들 2022.11.09

노상 방뇨

국민학교 입학 후 며칠 되지 않았을거다. 담임이 똥/오줌 대신에 대변/소변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했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1학년 때. 학교 운동장 주변에는 3-4단계의 높은 돌계단이 있고 그 위에 건물이 있었다. 돌계단 꼭대기에 서 있다가 운동장을 향해 소변을 누었다. 중간에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끊고 화장실을 갔다. 그 후로도 몇년은 더, 동네에서 놀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동네 담벼락에 친구들과 누가 더 높이 쏘나 경쟁하며 해결했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소변이 겹치면 머리카락 몇올을 뽑아서 소변위에 뿌리곤 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 친구 가족들과 지리산 계곡에 캠핑을 갔다. 띄엄 띄엄 있는 텐트 외에는 아무 시설 없는 곳이라 당연히 화..

옛 기억들 2022.11.04

반찬 투정

심하게 편식을 했었다. 미역국 등 극히 일부 국 종류와 김, 계란, 김치 등하고만 밥을 먹었다. 라면이 대중화된 건 그 다음 일이고. 국민학교 4학년 때, 보이스카웃 캠핑을 갔다. 국민학생들이 취사를 할 수 없으니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 주었고, 된장국과 몇가지 반찬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그 이후로 편식이 줄기는 했는데 국에 들어간 파를 모두 건져내고 먹고는 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국에 파를 넣지 않고 끓여 주셨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파를 먹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대신에 파 없는 국의 맛을 보여 주신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편식을 많이 극복했다.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모두 다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옛 기억들 2022.10.18

생일 잔치

국민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시절. 학교/동네 친구들 불러서 생일 잔치를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같이 음식을 하고 우리는 실컷 먹고 동네 공터에서 피구를 하며 놀았다. 피구를 하며 "이번에는 개구리 작전이야" 하며 옆으로 깡총깡총 공을 피해다니던 기억이 선연하다.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신나서 아이들을 선도하며 놀았던 것 같다. 아마도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라는 생각과 그걸 존중해 준 친구들과 어머니들 덕분이었겠지. 숫기가 없는 나를 위한 어머니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다. 그 다음해에 나는 당연히 또 생일 잔치를 하는 줄 알고 친구들에게 생일 잔치 초대장을 만들어 돌렸는데 음력/양력 개념이 없었던 나는 엉뚱한..

옛 기억들 2022.10.17

나의 살던 집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부산에서 홀로 직장생활하시던 아버지가 27세에 결혼하여 처음 마련한 집은 작은 부엌이 딸린 사글세방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한 계단 위에 주인집의 긴 마루가 있고, 대문 바로 왼쪽에 우리가 살던 방이 있고, 방을 지나가면 집의 안쪽에 재래식 화장실과 우물이 있었다. 그 집에서 나와 둘째가 태어났으니 1967년 2월에서 1971년 중반까지 살았다. 주인집에서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기억은 없는걸 보니 사물에 대한 기억력은 좋지만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릴적부터였나보다. 만 4살 즈음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네와 큰 소나무, 석류나무, 그 외에도 여러 꽃과 나무가 있는 넓은 마당과 방이 3개에 큰 욕조가 있는 화장실까지. 마당 끝에는 제법 많은..

옛 기억들 2022.10.14

기억의 왜곡

국민학교 1~2학년 때에 그림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크고 작은 어선 두척이 고기를 잡는 그림인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을 가지게 된 계기. 그림을 그려서 제법 상도 탔지만 대부분 참가상 수준. 특별활동도 미술반을 했는데, 수채화를 시작하고 얼마 후, 여러가지 색을 섞어서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물범벅이 된 산수화를 끝으로 그림에 대한 기억은 없다. 중학교에 가서 첫 미술시간에 그린 화분 정물화를 보고 선생님이 앞에 걸어두고 잘 그렸다는 칭찬 끝에 화분 아래쪽이 직선이라 입체감이 살지 않는다는 평을 했던 게 정말 마지막 기억. 국민학교 시절, 미술상을 몇번 타면서 미술학원을 다녔다. 하루는 미술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냥 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집에 가면 그날 그린 그림을..

옛 기억들 2022.10.12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에 깨어서 뭔가 생생한 꿈을 꿨었다 하는 느낌이 있을 뿐 그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흐릿하게 기억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몇개의 꿈만 기억이 난다. 1. 아주 어릴적 커다란 상자들이 드문 드문 놓인 공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빨리 엄마를 찾아서 이곳을 나가고 싶은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엄마는 커다란 상자 뒤에 숨어 있었지만 (웅크리고?) 꿈 속의 나는 엄마를 찾지 못했다. 2. 어릴적 집에서 보이는 금정산 너머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제일 먼저 알게 된 나는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모두 도망을 갔다. 산보다도 거대한 그 뭔가가 산 너머에서 모습을 나타냈을 때는 나 혼자 남았..

옛 기억들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