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들

Penpal

RoggyPark 2022. 11. 29. 07:49

펜팔 (pen-pal)「명사」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벗. 《표준국어대사전

1981년. 중학교 2학년 시절.

갓 영어를 배우면서 영국인 친구와 펜팔을 맺고 편지 교환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부탁해서 나도 동년배 영국인 친구를 소개 받아서 소식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영어 조기 교육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ABC를 배우던 시절이었으니

중학교 2학년이면 I am Tom. You are Jane.을 갓 벗어난 수준.

편지가 한번 오면 며칠을 끙끙대다가 영어 선생님에게 들고 갔고,

선생님이 조금 도와주는 게 아닌 거의 전체를 번역해 주셨다.

문제는 그 다음.

해석도 안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방법은 더더욱 없었다.

당시 서점에 가면 영어 펜팔 예문을 모은 책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한권을 사서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찾아 베껴 넣어서 편지를 보냈다.

편지가 가는데 2주 정도 걸렸는데, 편지를 보내면 딱 한달이면 답장이 오곤 했다.

답장 쓰는 데 하루 이틀이면 충분했다는 얘기.

하지만 내가 답장을 쓰는데는 2주도 부족했으니 많이 답답하기도 했을듯.

어느날 두툼한 편지봉투가 왔는데 두어장의 편지지와 네모나게 오린 신문기사 그리고 몇장의 사진이 있었다.

첫번째 사진을 보고는 엄마 사진을 보냈나 했고,

두번째도 세번째 사진도 엄마 사진.

몇장을 넘기니 예쁘장한 소녀와 예의 그 엄마가 같이 있는 사진이 있고

신문기사에도 그 소녀와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왜 본인 사진은 한장뿐이고 모두 엄마 사진을까 하는 궁금증에

편지를 들고 영어 선생님에게 갔고, 선생님이 전해준 이야기는 대충 아래와 같았다.

사는 도시에서 예쁜 소녀 선발대회를 했는데 친구가 출전을 했고 나는 들러리로 참석했어

친구가 우승했고 시내 퍼레이드를 하는 사진이 신문에 나와서 보낸다.

세상에...

예쁘장한 소녀는 친구였고 엄마라고 생각한 사람이 내 펜팔이었다.

서양 사람이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고 조금 덩치가 있어 아줌마 스타일이었지만

10대 딸을 둔 나이의 외모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갓 14살이 된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그에 대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아줌마처럼 생긴 외모도 한몫 했지만 되지도 않는 영어 실력으로 답장을 만들어 내는데 지쳐갈 때 즈음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잊혀진 그 "아이"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지는 않았을까?
펜팔을 계속 했다면 영어에 좀 더 흥미를 갖고 계속 공부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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