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한 지 갓 3년째 접어드는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고입 연합고사와 반 편성 시험 결과를 가지고 각 반의 반장과 부반장을 뽑았고,
1학년 때 반장/부반장을 한 사람은 3년 내내 반장/부반장을 맡는 전통(?)이 있었다.
큰 시험에 유독 강했던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월등한 점수 차로 전교 1등을 한 친구가 반장을 했다.
1학기 중간고사 후 수학 시험 답을 맞추는데,
반장과 내가 생각하는 답이 달랐고,
누구나 반장의 답이 정답일 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이 정답이었다.
그 과정에 반장과 친구들이 보인 태도에 상당한 굴욕을 느낀 후에야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을 본다는 걸 알았다.
1980년대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의 정석.
동생 병수발과 병원비 때문에 부모님은 집에 거의 안계셨고,
친척 중에서 성문과 정석에 대해 얘기해 줄 사람이 없었던 나는
성문과 정석에 대해서 고1 여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여름 내내 수학의 정석을 붙잡고 있었던 덕에
수학만은 꽤 잘 하는 학생이 되었지만,
영어는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외부로부터의 계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긍정적인 반응을 가진 트리거라면 좋겠지만
부정적인 트리거가 더 큰 반작용을 일으키는 예는 많다.
절치부심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
그러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많은 운이 작용하였지만 부반장이라는 위치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