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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집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부산에서 홀로 직장생활하시던 아버지가 27세에 결혼하여 처음 마련한 집은 작은 부엌이 딸린 사글세방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한 계단 위에 주인집의 긴 마루가 있고, 대문 바로 왼쪽에 우리가 살던 방이 있고, 방을 지나가면 집의 안쪽에 재래식 화장실과 우물이 있었다. 그 집에서 나와 둘째가 태어났으니 1967년 2월에서 1971년 중반까지 살았다. 주인집에서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기억은 없는걸 보니 사물에 대한 기억력은 좋지만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릴적부터였나보다. 만 4살 즈음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네와 큰 소나무, 석류나무, 그 외에도 여러 꽃과 나무가 있는 넓은 마당과 방이 3개에 큰 욕조가 있는 화장실까지. 마당 끝에는 제법 많은..

옛 기억들 2022.10.14

거짓말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전혀 못하는 건 아니다. ^^) 엄청난 거짓말을 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항상 몰려 다니던 5인방이 있었다. 하루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얘기를 해 버렸다. (여자친구는 커녕 여자사람친구도 없었다) 친구들의 열띤 반응에 우쭐해져서 시내에 있는 모 여고에 다니며, 예쁘고, 반장에, 공부도 잘하는 가상의 아이를 만들었고 그 이후로도 어디 놀러갔다, 손을 잡았다 등 계속해서 없는 얘기를 만들어내야 했고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거짓 이야기들의 무게와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친구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 아이가 병으로 죽었다는 큰 거짓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당시 만화를 보면..

문득 2022.10.14

Electronic typewriter

3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신입사원 입무교육 후 배치받은 부서에서는 전자식 타자기 firmware를 개발했다. 키보드에 타입바가 연결된 기계식 타자기와는 달리, 키를 누르면 100개의 글자가 새겨진 휠이 돌아가면서 인쇄하는 구조. 2 key rollover 방식의 keyscan은 16 byte 정도의 키 버퍼가 있었다. 키를 누르면 빠르게 인쇄하기 위해 shortcut을 찾아 휠을 CW 혹은 CCW 방향으로 돌리고, 기어 백래시와 휠 type의 흔들림이 멈추도록 잠시 대기한다. 이 시점에서 롤러-종이-리본-눌러진 키 타입-헤더가 정렬되어 있다. 이제 헤더로 키타입 뒷부분을 때리기만 하면 되는데 글자에 따라 키타입의 무게가 다르다 보니 같은 힘으로 때리면 글자별로 굵기가 차이가 ..

S-N-S-D-A-D 2022.10.13

32년 9개월 10일

SNSDAD SNS의 아버지도 아니고 SNS를 하는 아버지도 아니다. 32년 9개월 10일동안 내가 다닌 회사의 앞글자들. D 두개는 같은 회사이니 5개 회사를 다녔다. 첫번째 S에서 10년, N에서 2년, 두번째 S에서 17년, 그리고 마지막 DAD에서 각 1년씩 (마지막 D는 아직 재직 중) 9개월이 비는 건 짜투리 근무기간과 이직 사이의 텀 때문. 앞으로 얼마나 더 채우게 될까?

S-N-S-D-A-D 2022.10.13

기억의 왜곡

국민학교 1~2학년 때에 그림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크고 작은 어선 두척이 고기를 잡는 그림인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을 가지게 된 계기. 그림을 그려서 제법 상도 탔지만 대부분 참가상 수준. 특별활동도 미술반을 했는데, 수채화를 시작하고 얼마 후, 여러가지 색을 섞어서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물범벅이 된 산수화를 끝으로 그림에 대한 기억은 없다. 중학교에 가서 첫 미술시간에 그린 화분 정물화를 보고 선생님이 앞에 걸어두고 잘 그렸다는 칭찬 끝에 화분 아래쪽이 직선이라 입체감이 살지 않는다는 평을 했던 게 정말 마지막 기억. 국민학교 시절, 미술상을 몇번 타면서 미술학원을 다녔다. 하루는 미술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냥 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집에 가면 그날 그린 그림을..

옛 기억들 2022.10.12

너무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신입사원 교육 중, 용인에서 오리엔티어링을 했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미션을 수행하면서 숙소에 돌아 오면 깜깜한 밤. 미션과 도착 시간에 따라 팀별로 등수가 메겨지기에 경쟁이 치열했었다. 모든 미션을 마치고 뛰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배도 아프고 숨도 차서 더이상 뛸 수 없을 즈음에 옆에 같이 뛰던 동기가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격려를 해 주어서 결국 완주를 했다. 내가 힘들다고 먼저 얘기를 했는지, 다른 동기들이 나를 부축해 주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숙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교관들이 박수 치며 맞아 주던 장면은 선명하다. 너무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하며 격려해 주는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되곤 한다. 돌아 보면 나에게는 그 누군가가..

문득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