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1~2학년 때에 그림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크고 작은 어선 두척이 고기를 잡는 그림인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을 가지게 된 계기.
그림을 그려서 제법 상도 탔지만 대부분 참가상 수준.
특별활동도 미술반을 했는데, 수채화를 시작하고 얼마 후,
여러가지 색을 섞어서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물범벅이 된 산수화를 끝으로 그림에 대한 기억은 없다.
중학교에 가서 첫 미술시간에 그린 화분 정물화를 보고
선생님이 앞에 걸어두고 잘 그렸다는 칭찬 끝에 화분 아래쪽이 직선이라 입체감이 살지 않는다는 평을 했던 게 정말 마지막 기억.
국민학교 시절, 미술상을 몇번 타면서 미술학원을 다녔다.
하루는 미술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냥 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집에 가면 그날 그린 그림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어야 했기에
온천천 제방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말 두마리의 두상이 있고 갈기가 날리는 그림.
그림을 마무리하다가 불어온 바람에 스케치북은 제방 아래로 떨어졌다.
키가 넘는 제방이라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동네 형이 지나가다가 내려가서 올려주었다.
집에 갔을 때는 어머니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였고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다.
그날 나는 왜 미술학원을 빠졌을까?
오랫동안, 나는 지각을 해서 뒤늦게 들어가기 싫어서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미술학원에 지각 같은 게 있을리는 없으니 뭔가 다른 일이 있었겠지만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한 게 아닐까.